이 대화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어요? 옆자리 동료가 했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가 동료에게 했던 말 같기도 하고….
10년 전만 해도 누군가 퇴사를 계획 중이라고 하면 퇴사 이후 그리는 모습은 거의 두 가지로 나뉜 것 같아요.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하지만 최근 5~6년 사이 일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자세가 자아실현으로 바뀌면서 퇴사의 이유도, 퇴사 이후의 삶의 모습도 다양해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나의 시간을 컨트롤하며 일하고 싶어서, 더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고 싶어서, 지금 회사에서 개인적 성장을 이루지 못해서’. 무수한 대답들이 있는데 실은 이 대답들이 꼭 퇴사를 전제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직장을 다니는 동시에 여러 일을 통해 돈을 벌기도 하고, 수익을 내지 않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기만족감을 쌓기도 하죠.
일의 형태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N잡러, 프리랜스, 사이드 프로젝트, 다능인, 디지털노마드, 프리워커 등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용어도 가지각색입니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일을 선택하고 통제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건 분명 좋은 일인데요. 한편 회사 입장에선 고민이 생겼어요.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문제없지만, 회사의 자원이나 영업 비밀을 활용해 본인의 일에 쓰는 사람이나, 약속된 회사 업무 시간에 개인 업무를 더 돌보느라 조직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어요. 개인이 회사의 자원을 무단으로 이용한 사실을 회사가 알게 되어 해고 등의 징계를 내리고, 그 징계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례가 내려진 사례들도 있고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겠다며 애초에 ‘겸업 금지’를 회사의 취업규칙으로 삼는 곳들도 있는데요. 사실 사회 변화와 관련 법 조항을 고려하면 기업이 겸직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침을 유지하긴 어려워 보여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라면 정면으로 맞서야겠죠. 오늘은 N잡에 대해 한번 알아볼게요.
▲ 대학내일 소개서 일부 캡처 (출처: 대학내일 홈페이지)
1️⃣ 구성원 개인의 일이 회사의 브랜딩으로
대학 다닐 때 학생회관 엘리베이터 옆 가판대에 놓여 있던 잡지 ‘대학내일’을 본 적 있으시죠? 꼭 실물로 본 적은 없어도 한 번씩 들어 보긴 했을 거예요. 대학내일은 이름 그대로 20대 초중반을 주 타깃으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미디어인데요. 대학 잡지에서 시작해 지금은 MZ 세대의 문화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알리는 뉴스레터 ‘캐릿(Careet)’을 발행하고, 사회 초년생들을 주 타깃으로 하는 ‘직장내일’이라는 미디어를 운영하기도 해요. 한 마디로 2030 젊은 세대와 관련된 문화나 라이프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가장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요.
겸업에 대한 이슈는 그 어떤 세대보다 MZ 세대에서 뜨거운 이슈인데요. MZ 세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학내일도 이 이슈를 놓칠 리 없겠죠. 실제로 대학내일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직장내일’에서도 N잡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어요. 콘텐츠로 이슈를 다루는 건 다루는 거고, 실제 자신들의 상황이 되면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그런데 대학내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물론 대학내일 사내에서도 겸업에 대한 이슈를 두고 논란이 있었대요. 구성원이 다른 일을 겸업할 때 조직의 질서나 다른 구성원과 협업하는 데 피해가 갈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도 있었고, 리더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뜨거운 이슈였다고요.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
<인재를 알아보는 회사들은 면접 이렇게 본다(좋은 질문과 답변)> 중 내용 일부 캡처
그런데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바로 대학내일의 대표님이요. 어느 날 사내 공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셨대요.
‘N잡을 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N잡을 하더라도 본인의 책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책임을 다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하므로 겸업 금지 조항을 삭제합니다.’
‘책임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자기다움을 존중하는 회사’라는 기업의 가치에 부합하는 답변이죠? 이 기조를 바탕으로 대학내일에는 회사의 찐팬으로 책임을 다하며 일하는 구성원이 많다고 해요. 그들은 자신만의 콘텐츠나 일을 병행하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다시 대학내일의 브랜딩으로도 연결되고요. 겸업을 두고 회사와 개인 모두 윈윈(Win Win) 하는 좋은 사례 같네요.
2️⃣ 정부에서 발 벗고 권하는 투잡
우리나라의 바로 옆 나라이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일찍 겸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어요. 일본에선 아주 오랫동안 ‘부업’과 ‘겸업’이 일종의 금기어였다고 하는데요. 사회가 다변화되고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면서 결국 구성원의 겸업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해요. 2017년 기사들에 따르면, 일반 사기업 직원들뿐만 아니라 일부 시에서는 공무원들에게도 겸업을 허용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3년 이상 재직자, 업무와 이해가 상충하지 않는 조건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부업이 가능하지만요.
이렇게 정부와 사회가 겸업 장려에 발 벗고 나서게 된 배경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주된 이유는 갈수록 줄어드는 노동력 감소에 따른 사회적인 조치라는 시각이 주를 이뤄요.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평생 직장의 신화는 무너진 지 오래고, 일손 부족으로 은퇴 시기가 늦춰지면서 젊은 생산 인력 투입이 줄어든 배경이 있죠.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자리하다 보니, 개인들 입장에선 더 이상 한 회사에서 받는 고정 급여만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하게 됐고요. 물론 다양성과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흐름이 이끌어낸 변화이기도 합니다.
내부 방침이 빡빡하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보험사들에서도 직원들에게 사외 부업과 겸업을 권한다고 해요. 일본 최대 손해보험 기업인 ‘도쿄해상일동화재’는 2021년 근무형태 혁신 방안 중 하나로 재직 중 파트타임이나 자영업을 하는 등의 부업을 전면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대요. 덕분에 모든 임직원은 평일 업무 시간 이후나 주말에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제2의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고요. 단, 다른 회사와 고용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조건이 있어요. 도쿄해상일동화재는 겸업 허용 제도 도입의 이유로 이렇게 말했어요.
“사외 부업이나 겸업을 통해 회사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고 인맥을 넓힐 수 있다. 또 임직원 개인으로선 업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회사는 유능한 임직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

자기다움을 충족하고 싶어 하는 욕구, 갈수록 줄어드는 생산 인구와 늘어나는 부양 인구. 이 이야기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겸업 허용에 대한 요구는 지속될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고 기준 없이 모든 겸업을 허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아요. 선행돼야 할 것은 감춰둔 이 주제를 밖으로 꺼내 구성원들과 의논하는 일이죠. 구성원과 함께 논의하면 합당한 제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테고, 무엇보다 구성원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더욱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겸업을 허용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건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마음만큼 함께 일하는 공동체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니까요.
💡질문에 생각해 봅시다!
✅ N잡, 부업에 대한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 수익 실현, 에너지와 시간 투입 등
✅ 직원이 회사 일이 아닌 다른 업무를 병행할 때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우리회사는 겸업, N잡을 권하나요?
마이다스HR 에디터 이슬기
관심사가 넓고 다양해 이야기 보따리 장수로 불립니다. 흩어진 이야기를 모으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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